디오니소스의 신전, 페르페리콘

  • 여행
  • 19/08/2023 10:00
  • 426 견해
  • Song Yujin
디오니소스의 신전, 페르페리콘

디오니소스의 신전, 페르페리콘

페르페리콘(Perperikon)은 로도피(Rhodopes) 산맥에 위치한 발칸반도에서 가장 큰 거석 유적지이다. 페르페리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고르나 크레포스트(Gorna krepost)는 해발 470m에 자리하고 있으며 근처에는 사금을 함유한 페르페레쉬카(Perpereshka) 강이 흐르고 있다.

페르페리콘은 원래 이름은 하이퍼페라키온(Hyperperakion)이었다.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그리스어인 하이퍼피로스(중세의 고온 금 정제 방식) 혹은 하이퍼파이로스(제단불)에서 파생되었다고 여겨지고 있다.

기원전 6천 년 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있으며, 기원전 5세기 말부터 청동기 시대(기원전 3세기)까지 태양신을 숭배하는 종교를 위해 사용되었다. 정교한 금속 도구를 사용하여 단단한 암석을 절단하였는데, 중앙에 거대한 원형 제단이 있는 타원형 홀을 제작할 정도의 기술이었다. 그곳에서 사제들은 포도주와 불로 의식을 거행하였으며 이는 로도피 산에서 오랫동안 따르던 전형적인 디오니소스 신전의 형태였다. 이 신전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예언이 나왔다. 하나는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에 관한 신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최초의 로마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권력과 힘에 대해 예지하였다.

이후 페르페리콘은 성벽을 갖춘 요새, 궁, 주변 주거지 등으로 구성된 마을이 되었고 트라키아(Thracian)의 여러 부족가운데서도 베시(Bessie) 부족의 왕실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기 378년에 고트(goths)족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5세기경 그들은 기독교로 개종하여 중심지가 되었다.  7-14세기 동안 페르페리콘은 지역 중심지로 번창하였으나, 14세기 말 오스만 제국의 공격을 받아 요새는 무너졌고 그들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으나 2000년에 불가리아 고고학자 니콜라이 오브차로프(Nikolay Ovcharov)에 의해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현재는 불가리아 100대 국가 관광지로, 매년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고고학 발굴 중 발견된 유물들은 커르잘리의 역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운영시간

  • 매일 오전 7:30~오후 8:00

 입장료

  • 18세 이상 방문객 : BGN 6
  • 학생 및 연금 수령자 : BGN 2
  • 7세 이하 어린이 및 장애인 : 무료
  • 가이드(불가리아어) : BGN 30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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